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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도기념물 / 이수 선생 묘
도기념물/이수 선생 묘 이미지
  • 지정번호 : 도기념물 제54호
  • 지정일자 : 1980. 6. 2
  • 명 칭 : 이수 선생 묘
  • 소 재 지 : 성남시 분당구 궁내로 52
  • 소 유 자 : 전주이씨 덕양군파 종회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숙공 이수(李晬, 1569~1645)는 인조대의 종친(宗親)으로 자는 명원(明遠)이며,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다.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 1524~1581)의 손자이자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 1538~1611)의 아들이다.
학문이 뛰어나 1583(선조 16)년 15세 나이로 부정(副正)에 봉해졌고, 임진왜란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원록(璿源錄)의 편수(編修)에 참여하였으며 1613(광해군 5)년 귀천군(龜川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617(광해군 9)년 전라남도 순천에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게 되었다. 1624(인조 2)년에 이괄(李适)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도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소덕대부(昭德大夫)에 올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정1품 벼슬만 기록할 수 있는 현록대부(顯錄大夫)에 오르기도 했다.
이수선생 묘는 부인 정씨와의 합장묘이고, 조성된 봉분 아랫부분에는 각각 팔각 호석을 설치하여 봉토의 유실을 방지하였다. 그 좌우에는 망주석(높이 172㎝)과 문인석(높이 172㎝)이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묘역에는 상석(31X98X162㎝)과 혼유석, 향로석(높이 36㎝)이 있다. 고석 대신 방형의 석재 2개로 상석을 받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며, 망주석에는 염의(簾衣)와 운각(雲角)을 장식하였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은 안정적인 신체 비례를 갖추고 있으나, 홀을 쥐고 있는 양손이 미숙하게 표현되었다. 봉분 사이에는 묘갈(높이 174㎝)이 세워져 있다.
비신(67X21X150㎝)과 하단이 마멸되었으나 전면의 대자(大字)를 통해 묘에 묻힌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삼면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이 지은 묘갈문을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기록하였으나 마모가 심한 상태이고 건립 연대 역시 미상이다. 묘역 아래의 신도비(높이 279㎝)의 비문은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가 찬하여 전해지다가 1897(광무 1)년에 비로소 10세손 부호군(副護軍) 이승휘(李承徽)가 비신 앞뒤에 글씨를 쓰고, 9세손 이봉현(李奉鉉)이 전액(篆額)을 올려 완공하였다. 비문의 말미에는 12세손 이장섭(李章燮)이 건립 과정을 서술한 추기(追記)를 새겨 놓았다. 또한 개석에는 팔작지붕을 얹었고, 방부에는 안상(眼象)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도기념물 / 이경석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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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번호 : 도기념물 제84호
  • 지정일자 : 1985. 9. 20
  • 명 칭 : 이경석 선생 묘
  • 소 재 지 :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50-7
  • 소 유 자 : 전주이씨 백헌공파 종친회 덕천공파 종회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은 인조에서 효종, 현종의 3대에 걸쳐 나라에 공헌한 재상이었다. 본관은 전주, 자는 상보(尙輔), 호는 쌍계(雙磎) 또는 백헌(白軒)이다. 아버지는 유간(惟侃)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 대호군 고한량(高漢良)의 딸이다.
이경석은 1613(광해군 5)년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별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되었다. 1623(인조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627(인조 5)년 정묘호란 때는 체찰사 장면(張晩)의 종사관으로서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대사헌, 부제학으로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고, 이듬해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다. 1642(인조 20)년 심양에서 돌아와 대사헌, 좌의정 등을 거쳐 1649(효종 1)년에 영의정에 올라 효종의 북벌정책에 참여하였다. 1668(현종 9)년에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와 관련한 사궤장과 <사궤장연회도첩> 이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930호로 지정되었다. 이경석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성남의 판교로 옮겨 살다가, 뒤에 지금의 석운동에서 만년을 보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등 유집 50여 권이 있다.
그의 묘는 부인 전주유씨와 합장묘이며, 2단의 사성으로 후면을 정리하였고 봉분 앞에는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조성하였다. 봉분 좌우에는 망주석과 금관조복형(金冠朝服形) 문인석이 각 1쌍씩 서 있다. 망주석은 8각으로 극히 화려하며 석수 조각이 양각되어 있다.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석과 계체석, 4각과 6각의 향로석 2기, 장명등이 있으며, 봉분 우측에 상석과 4각 향로석 등 다수의 석물이 있다. 신도비의 규모는 총 높이 475cm, 비 높이 259cm, 너비 84cm, 두께 40cm이다. 비문은 박세당이 짓고 이광사가 쓰고 전액을 하였으며 1754(영조 30)년에 건립되었으나,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모되어 1975년 개수하였다. 묘갈은 1751(영조 27)년에 건립되었는데, 갈문은 현손 광회와 광사가 각각 짓고 썼다. 비의 규모는 53X22X162cm이다.
이경석 선생 묘는 1985년에 경기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이씨 백헌공파 종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도기념물 / 한산이씨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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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번호 : 도기념물 제116호
  • 지정일자 : 1989. 12. 29
  • 명 칭 : 한산이씨 묘역
  • 소 재 지 :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550
  • 소 유 자 : 한산이씨 한평군파 종회

한산이씨 묘역은 성남시 수내동 중앙공원 내에 편입되어 있다. 묘역은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걸쳐 해발 약 70m의 영장산(靈長山) 일대에 조성되었는데, 전체 규모는 약 287,000㎡에 이른다. 정남향 묘역에는 토정 이지함의 조부로 봉화현감을 지낸 한원군 이장윤(李長潤, 1455~1528)의 묘를 비롯하여 한성군 이질, 한평군 이지숙, 아천군 이증(李增, 1525∼1600)의 묘가 위치해 있고, 동남향에는 아천군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신 병조좌랑 이경류(李慶流, 1564~1592)와 정부인 횡성조씨, 그의 애마총, 김제군수 이정룡(李廷龍, 1629~1689)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묘역 아래에는 의간공(懿簡公) 이증의 부조묘(不祧廟)가 건립되어 있으며, 중앙공원 탄천변의 비각에는 1715(숙종 41)년 세워진 이증 신도비와 1728(영조 4)년에 세워진 이정룡 신도비가 있다. 그 옆에는 이경류의 충신정려문(忠臣旌閭門)과 1728(영조 4)년에 건립한 한산이씨삼세유사비(韓山李氏三世遺事碑)가 나란히 서 있다. 이중 삼세유사비의 비문은 1722(경종 2)년 후손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지었고, 규모는 80X26X198cm이다. 또한 세장묘역 내에는 현풍현감 이확(李穫, 1583~1658)의 사위인 홍수원(洪晬元, 1611~1637)의 묘가 있는데, 이는 처가의 선산에도 매장될 수 있었던 당시의 풍습을 엿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순절한 병조좌랑 이경류의 말 무덤 같은 이색적인 유적도 있다. 한편 세장 묘역의 외곽에는 경계 표시를 위한 한산이씨입수비(韓山李氏入首碑) 1기와 ‘한산이씨세장지산(韓山李氏世葬之山)’이라 쓰여 진 표석 2기를 세워 놓았다. 이 역시 다른 세장 묘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이다.
한산이씨 묘역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어 당대를 대표할 만한 사대부의 세장 묘역이라 평가된다. 경기도에서는 분당 신도시 개발 당시인 1989년 한산이씨 묘역의 보존을 결정하고, 경기도기념물 제116호로 일괄 지정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여 보존하고 있다.

도기념물 /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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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번호 : 도기념물 제118호
  • 지정일자 : 1989. 12. 29
  • 명 칭 :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
  • 소 재 지 :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산33-1
  • 소 유 자 : 전주이씨 태안군파 종친회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팽수(李彭壽, 1520~미상)와 그의 아들 이강(李橿, 1551~1585), 증손인 이경인(李敬仁, 1575~1642)과 생몰년 미상의 이석명 등 4기의 묘소가 있다.
묘역은 전주이씨 태안군파가 조선 전·후기에 세거하였던 정자동 불곡산(佛谷山) 자락의 구릉에 위치한다. 이팽수 묘는 원래 분당구 정자동 산11-1에 있었으나 분당 신도시 개발로 인해 1991년 발굴 조사를 거쳐 정자동 34-4(황새울로132번길 32)로 이장하였다. 아래에 아들 이강 묘가 있다. 이경인 묘는 정자동 산 33-1에 위치하고 있다. 묘향(墓向)은 각 묘소가 안장되어 있는 지형에 따라 정서향, 남서향, 서향을 하고 있다.
태안군 이팽수는 성종의 제12남인 무산군의 다섯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왕을 호위한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그의 묘는 부인 안산김씨(安山金氏)와의 합장묘로 쌍분이다. 쌍분의 중앙 앞에 월두형(月頭形)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상석의 좌·우에는 문인석이 배열되어 있다. 묘비는 1597년(선조 30)에 건립되었다. 묘표의 규모는 비신이 69X18X154cm, 기태가 85X53X34cm이다. 쌍분 모두 회곽묘(灰槨墓)에 외관 및 내관을 사용한 이중관의 구조였으며, 태안군의 묘에서 백자 명기 10점과 부인의 묘에서 청화백자 묘지석 7매, 백자 명기 2점이 출토되었다.
이강 묘는 특이하게 뚜렷한 봉분의 흔적은 없으나, 묘표,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문인석 각 한 쌍 등 다수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태안군의 증손 이경인은 이천도호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묘는 단분으로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으며, 묘역 전방에는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배열되어 있다. 상석과 향로석은 화강암으로 142X80X30cm 규모이며 망주석은 120cm이다. 문인석은 대리석재로 30X24X115cm이다. 묘갈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규모는 비신이 45X15X128cm, 기태가 79X57X20cm이며, 기태의 평면에는 연화문이 측면에는 안상문이 조식되어 있다. 묘갈은 삼면비로 그의 선계와 관력이 명기되어 있는데, 지은이와 글쓴이는 마모로 인하여 알 수 없다. 묘비는 1696(숙종 22)년에 건립되었고, 3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하다. 묘역의 석물은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으며, 그 형태는 특별히 화려하거나 번잡함 없이 단순한 편이다. 이 중 금석문을 대표하는 묘갈과 묘표는 전체 4기의 묘소가 모두 비좌와 비신 월두 형태이다. 공통적으로 비문을 짓고 쓴 찬자와 서자가 명확하지 않다.

도기념물 / 천림산봉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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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번호 : 도기념물 제179호
  • 지정일자 : 2002. 5. 3
  • 명 칭 : 천림산봉수지
  • 소 재 지 : 성남시 분당구 금토동 산35-5
  • 소 유 자 : 성남시

천림산 봉수는 현재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35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의 형태는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으로 전체 면적은 333m², 둘레는 80m이며, 동서의 길이는 33.6m, 남북의 길이는 12m이다. 그 중 북쪽 방화벽의 길이는 30m이고 동쪽 방화벽은 16m이며, 남쪽 방화벽은 29.3m이다. 조선 초기 봉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천림산 봉수는 현존하는 봉수 중 규모가 가장 크며, 구조적으로 가장 완벽한 5개조 연조와 방화벽 및 담장지 등을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5로거 봉수노선 중 2로거 내지봉수의 직봉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이격 거리 18.75km)에서 신호를 받아 서울 목멱산(현 남산) 봉수(이격 거리 16km)에 신호를 전달하는 경기도 관내의 마지막 봉수이다.
천림산 봉수의 명칭은 穿川山(천천산), 穿川峴(천천현), 月川峴(월천현), 天臨山(천림산) 봉수 등으로 4차례 변천되었다. 한편, 천림산 봉수군의 근무 인원과 관련하여서는 『중정 남한지(重訂 南漢誌)』(1846년) 봉수조에 봉군(烽軍) 25명, 봉군보(烽軍保) 75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여타 다른 봉수와 같이 봉군 5명이 조를 이루어 5교대로 월 평균 6일씩 근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봉군보 75명은 실제 근무를 하지 않는 대신 근무를 서는 봉군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하였으며, 봉군 1인당 봉군보 3인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수제도는 전신 전화 도입과 함께 1894(고종 31)년 폐지되었다.

도기념물/둔촌 이집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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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번호 : 도기념물 제219호
  • 지정일자 : 2008. 5. 26
  • 명 칭 : 둔촌이집묘역
  • 소 재 지 :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 320
  • 소 유 자 : 광주이씨 대종회

이집(李集, 1327~1387)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성노(成老), 호연(浩然), 호는 묵암자(墨岩子), 둔촌(遁村)이다. 이당(李唐)의 아들로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했다. 1347(충목왕 3)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1368(공민왕 17)년 신돈의 비행을 비판하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예견해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영천(永川)에서 은거하였다. 1371(공민왕 20)년 신돈이 역모로 주살 된 후, 옛집인 송경(松京)의 수양산(龍首山) 아래 현화리(玄化里)에 돌아왔다. 이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령현(川寧縣)에서 독서와 농경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시편신립(詩篇新粒)에 대한 질문서를 보내 당시의 문사(文士)들을 경탄케 하였다. 1669(현종 10)년에 건립한 광주(강동구 암사동)의 구암서원(龜岩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유고로 『둔촌유고(遁村遺稿)』가 있다.
둔촌 이집 묘역은 부인 정화택주 영주황씨와의 원형 합장묘이다. 용미와 활개를 갖춘 봉분의 높이는 1.8m, 지름은 6.6m이다. 석물로는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석, 사각 향로석, 장명등이 있고, 상석 좌·우에 소형 망주석, 문인석 한 쌍 외에 차양석 네 개와 이단의 계체석 및 봉분 좌·우측 신구 묘표가 각 1기씩 서향하고 있다. 이 중 묘표는 백색 화강암제의 비좌와 비신 월두형이다. 비신 전후(前後) 두 면의 비문은 11대손 이휴징(李休徵, 1607~1677)이 지었다. 장명등에는 화창공과 사모 지붕에 연봉 장식이 있다.
둔촌 이집 묘역은 1993년 8월 2일 성남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5월 26일 경기도기념물 제219호로 승격되었다.

담당부서 : 교육문화국 > 문화예술과 > 문화재보존팀 문의 : 031-72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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