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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9.(화)

  • 갈현동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갈현리(葛峴里)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독점 새터말을 병합하여 갈현리라 칭하였다. 1973년 7월 법정동으로 성남시에 편입되고 18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여수동의 관할이 되었다. 갈현동(葛峴洞) 의 유래는 갈마치고개에서 유래한다. 고개 밑이 됨으로 갈마치 또는, 갈현이라 칭한다. 그런데 갈현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옛날부터 칡이 많으므로 갈현(葛峴)이라 하였다는 설과 옛날에는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 때에 말에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주고 떠났다고 하여 갈마치(葛馬治) 또는 갈현(葛峴)이라 한다는 것이다. 평택임씨 족보에는 갈현(渴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 금광동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은행정이·논골·금광리를 병합하여 단대리(丹垈里)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창곡을 병합하여 단대동(丹垈洞)으로 되었다.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다시 단대2·3동으로 분동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단대2동은 금광1동(金光1洞), 단대3동은 금광2동(金光2洞)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중원구에 편입되게 되었다. 금광동(金光洞) 동명의 유래는 금광리(金光里)라는 자연취락의 이름을 살려서 동명(洞名)으로 한 것이다. 금광리(金光里)에는 고려말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감약시(金若時)가 은거하여 살다 별세하였는데, 그 자손이 벼슬에 오르고 집성촌을 이루어 세상사람이 광산김씨(光山金氏)네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금광리(金光里)라 칭하였다. 단대쇼핑 부근이 금광동의 입구로 양쪽 산이 마주 접근하여 병목처럼 지형이 이루어져 광통(光通)머리라 칭하기도 하였다. 김약시는 자손들에게 내가 살던 이 고을을 세상에 전하지 말라고 하였다하여 일명, 부전오동(不傳吾洞)이라고도 한다.

  • 도촌동

    도촌동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도촌리(島村里) 또는 옹점리(甕店里)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돌마면 도촌리(島村里)라 칭하였고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에 7월 성남시 도촌동(島村洞)으로 개칭되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도촌동(島村洞)의 동 명칭은 마을 앞과 뒤에 하천이 있어서 마치 섬처럼 생겼다 하여 섬말(島村)이라 칭한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마을만 섬처럼 남아서 섬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나, 조선시대 지리지에 도촌리(島村里)로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무근임을 알 수 있다.또한 1912년과 1917년에 발간된 지지(地誌)에는 옹점리(甕店里)로 기재되어 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옹기를 구웠는지는 알 수가 없다.

    • 안산 : 섬말 안쪽에 있는 산으로 옹달말과 야탑동 상탑에 걸쳐 있다.
    • 이왕산(利旺山) : 도촌동의 주산으로 섬말과 야탑동 상탑과 광주읍 직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마루턱에 서낭당이 있다.
    • 진진산 : 두루봉의 연봉으로 섬말 동쪽의 얕은 산이다.
    • 길마봉 : 섬말과 광주읍 직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세가 갈마형국이라 한다.
    • 두루봉 : 갈현동과 도촌동 및 광주읍 직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이왕산 북쪽에 있다.
    • 종지봉 : 두루봉과 이왕산 사이에 있다. 아주 먼 옛날 천지개벽 때 종지만큼 남아 종지봉 이라 칭하게 되었다.
    • 독고개 : 섬말과 갈현동 샛터말 사이에 있는 농로이다.
    • 마지기고개 : 양지말과 하대원동 사이에 있는 도로인데 폐쇄되었다.
    • 비성골고개 : 증말과 야탑동 중탑 사이에 있다. 고성이씨 선대 묘비가 있어 비석골이라 한다.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국논들 : 이왕산고개 서쪽으로 진산과 능골 사이에 있는 들이다.
    • 도촌교 : 증말과 섬말 사이에 있다. 총연장 30m, 교폭 4m로 1984년 12월에 준공되었다.
    • 맷도바위 : 두 개의 바위가 맷돌처럼 포개져 있으며 병풍바위 서쪽으로 20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 병풍바위 : 안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로 병풍처럼 생겼다.
    • 샤꾸모퉁이 : 맞내남골 동쪽으로 이곳을 넘으면 광주읍 직리에 이른다.
    • 유산터벌 : 산소골 북쪽에 있다. 대부분이 논이며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차돌박이 : 섬말과 갈현동 샛터말 사이 독고개 동쪽으로 차돌이 많다.
    • 통뫼 : 섬말 총비에 동그랗게 생긴 지형으로 예전에 변씨 묘가 있었다하여 변장소라고 칭하기도 한다. 마치 섬같이 생겼다.
  • 상대원동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초면 지역으로 대야원(하대원동) 위쪽에 있으므로 웃대원 또는, 상대원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보통골- 중간말과 군내면의 사기막골을 병합하여 상대원리(上大院里)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고, 1973년 성남시에 편입되어 상대원동(上大院洞) 으로 개칭되었다. 1975년에 상대원1-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0년에 상대원1동은 1- 3동으로 분동되었다. 1989년에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상대원동 동명의 유래는 상대원 일대가 보곡동(普谷洞)이었는데, 송언신(宋言愼)의 서원이 있는 곳(상대원)과 이집(李集)의 서원이 있는 곳(하대원)을 구별하여 상대원(上大院)과 하대원(下大院)으로 개칭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대원(大院)이 있어서 위쪽을 상대원 아래쪽을 하대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검단산 : 보통골 뒷산 일명 망덕산이라고 한다.
    • 푸링산 : 보통골 남서방향에 길게 놓인 산, 장등 너머가 갈현동이다.
    • 벌렁고개 : 논골에서 농사를 지어 나르던 고개로 힘이 들어 헐떡헐떡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보통골고개 : 보통골에서 사기막골로 가는 고개
    • 이배재(二排峴) : 광주읍 목현리(木峴里)로 이어지는 고개로 상대원 동쪽에 있는데 광주장 보러가는 길로 퇴계 이황(李滉)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다가 이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넘고 보면 황성이 보이지 않으므로 임금계신 한양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떠났다고 하여 이배재라 칭하게 되었다.
    • 가락골 : 사기막골 동쪽 골짜기이다.
    • 등골 : 작은골과 탐탁골 사이의 골짜기이다.
    • 부중골 : 사기막골 남서간에 위치해 있다.
    • 은골 : 보통골 남쪽 광주로 가는 도로가 있는 골짜기이다.
    • 작은골 : 사기막골 북쪽 화성사 뒷골짜기이다.
    • 절골 : 사기막골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절이 있다가 바퀴벌레 때문에 폐사하였다고 한다.
    • 탐탁골 : 작은골과 가락골 사이에 있다.
  • 성남동

    성남동은 본래 광주군 세촌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탄리(炭里)라 해서 중부면에 편입시켰다. 1961년 재향군인회 모란단지가 개척되면서 갑자기 가시화됨에 따라 1964년 2월 중부면에 성남출장소를 두었다가 1971년 9월 경기도 성남출장소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성남시로 승격됨에 따라 탄리를 성남·신흥·태평·중앙동의 4동으로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수진리 일부, 단대리 일부, 하대원리 일부 지역과 탄리 일부가 병합되어 성남동(城南洞)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성남동명(城南同名)은 성남시가 개발되기 전에 가장 먼저 개척되었던 지역이므로 성남시의 상징이 되어야한다고 해서 성남(城南)의 명칭을 그대로 붙인데서 연유한다.

  • 여수동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여수동(麗水洞)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麗水里)라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에는 성남시 여수동(麗水洞)으로 개칭되었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여수동(麗水洞)이란 명칭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는 김윤탁(金允濯)이 마을 앞의 개울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하여 천자문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 금생여수(金生麗水)라 칭한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일명 예술, 여수울이라고도 한다. 결정장씨 개성파보에는 여수동 소만말 장씨 종산이 광주 석촌면(石村面)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돌마면을 한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지(1982)에는 「이조초에 가차률리(加遮栗里)라 부르던 곳인데 선조때 임진왜란을 치룬 후에 하오리(下吾里)라 부르다가 1915년부터 여수리(麗水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순천김씨 족보에는 윤탁 이하의 묘소가 여수리(麗水里)로 기록되어 있다.

    • 뺄부리산 : 여수파출소 동쪽에 있는 산으로 분당지구에 편입되었다.
    • 샛터말고개 : 샛터말과 속말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 소막고개 : 소만말과 지방도 385번 도로 사이에 있는 고개
    • 하대원고개 : 안말과 하대원동 사이에 있는 소로이다.
    • 뒷골(後谷) : 회천말 뒤(동)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이곳은 명당자리가 많은데 평양조씨- 전주이씨- 순천김씨- 남양홍씨 등의 묘가 있다.
    • 밭소막치골 : 지방도 385번 도로 동쪽의 좁은 골짜기이며 농경지가 대부분이다.
    • 삼태기골 : 삼태기처럼 오목하게 생긴 좁은 골짜기로 대부분 논이다.
    • 웃터골 : 안말 위(동북)에 있어 웃터골이라 칭하며 이곳에 검바위가 있다.
    • 동경내 : 도촌동 소재 이왕이고개와 갈현동 소재 이부재고개에서 발원하여 도촌동 섬 말ㆍ 중말- 여수동 벌말을 경유하여 탄천에 유입되는 하천이다.
    • 못우물 : 웃터골 동쪽 논 가운데 있는 옛 안말의 대동우물로 농업용수이다.
    • 에게수우물 : 그멀지기들 논 가운데 있는데 삼남지방 사람이 한양 갈 때에 마시던 이름 난 우물
    • 옻우물 : 회천말 동쪽 산 밑에 있다.
    • 검바위 : 바위가 검게 생겨 검바위라 칭한다. 이 바위에 구멍이 있는데, 두 사람이 먹을 양의 쌀이 나왔다 하며 일명, 쌀바위라고 한다. 검바위는 근래 흰바위로 변했다.
    • 거멀지기들 : 논에 거머리가 많아 그머지기들이라 칭하며 「거멀지기들」이라고도 한다.
    • 다락치들 : 탄천에 보를 막아 논농사를 짓는데 토질이 토박하다.
    • 보두시피들 : 숲이 많았던 곳으로 한발이 극심할 때에 관정(管井)을 파고 농업용수로 이 용했을 만큼 샘이 잘 나는 들이다.
    • 선상바위 : 검바위 남쪽 50여m 지점에 있는 넙적한 바위.
    • 여수교(麗水橋) : 여수파출소 서북 5m지점에 있는데 총연장 46m, 교폭 25m 1986년 3월 15일에 준공된 다리이다.
    • 연적바위 : 선상바위 서쪽 20여m 지점에 있다. 연적(硯滴) 형상이라 한다.
    • 원수머리들 : 지방도 385번 도로와 소만말 사이 소막고개 주변인데, 이곳에서 원수(元帥) 가 태어났다고 한다.
  • 은행동

    은행동은 1975년 7월 1일 성남시 조례 제70호에 의하여 단대동의 은행정이를 갈라서 은행동이라 칭하고, 1979년 9월 15일 분동(分洞)하여 은행1·2동이 되었다. 1989년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동명은 은행정(銀杏亭)에서 유래한다. 은행시장 뒤편에 수고 30m, 둘레 6m, 수령 약 300년 가량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여름이면 정자나무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은행정(銀杏亭)이라 불리우는데 으능쟁이·은행쟁 이라고도 한다. 은행동(銀杏洞)은 바로 이 은행나무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다.

  • 중앙동

    중앙동은 본래 광주군 세촌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에 탄리(炭里)라 했고, 1946년 중부면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 1968년 5월 서울특별시의 「주택지 경영사업 실시」에 따라 1969년 4월부터 정지작업에 들어가 서울 철거민이 집단 이주하였고, 1973년 7월 성남시로 승격됨에 따라 독립된 행정동(洞)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중앙동(中央洞)이란 명칭은성남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하대원동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하대원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대원리(下大院里)라 하였고 1973년 7월 성남시에 편입되고,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되어 여수동 관할이 되었다.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하대원동은 송언신(宋言愼)의 서원이 있는 곳을 상대원이라고 칭하는데 대하여 이집(李集)의 서원이 있는 곳을 하대원이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 중엽에 사원이 건립되었던 곳을 원터 혹은, 대원(大院)이라 부르다가 원터 아래쪽을 하대원, 위쪽을 상대원으로 칭하게 되었다는설이 있다. (상대원동참고)

    • 매봉재 : 아골에서 남쪽에 위치한 높은 봉.
    • 광능고개 : 하대원에서 중앙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둔촌의 신도비가 있다.
    • 원터고개 : 하대원에서 공설운동장으로 가는 길.
    • 고불터골(古佛地谷) : 둔촌 묘 옆으로 예전에 절이 있었다 한다.
    • 광늘골 : 북쪽 광주이씨 묘역이 있는 골짜기.
    • 능골 : 안골에서 북쪽으로 둔촌 손자의 묘역이 있는 곳.
    • 전나무골 :대야원에 있는 전나무가 많았다는 골짜기.
    • 기타 넓은바위, 검은바위, 봉바위가 있었다.
담당부서 : 교육문화환경국 > 문화관광과 > 문화팀 문의 : 031-729-2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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